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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사

[기자의 시선] 조상의 죄, 후손의 벌…우리는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나

배우 하영을 둘러싼 논란이 연예계를 넘어 우리 사회의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꺼내 들었다.

‘조상의 잘못을 후손에게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가.’

최근 배우 하영은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다. 하영은 과거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소개하며 증조부가 고종을 진료한 의사였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증조부의 일제강점기 활동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고, 하영은 자신의 가족사를 경솔하게 언급했다며 사과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논란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광고와 방송계로 여파가 번졌고, 결국 하영은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 후속 시즌에서도 하차하게 됐다. 넷플릭스 측은 배우의 입장을 존중해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친일 행적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통과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식민지배에 협력한 이들의 행적을 정확히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상의 행적이 후대에 알려지는 것 역시 역사적 검증의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조상의 역사적 책임과 후손 개인의 책임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하영이 증조부의 행동을 결정한 것도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그 시대를 살아간 것도 아니다. 증조부의 행적에 대해 후손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고 성찰할 수는 있지만, 그 행위 자체의 책임까지 후손에게 상속시킬 수는 없다.

헌법 역시 형사책임을 비롯한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상의 행적 때문에 후손의 사회적 활동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법률상 연좌제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 어딘가 ‘현대판 연좌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하영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녀가 사과한 이유는 증조부의 친일 행위를 자신이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가족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는 데 대한 사과였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그녀의 증조부가 무엇을 했는가’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후손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후손이 조상의 잘못을 감추고 미화한다면 비판받을 수 있다. 반대로 그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 앞에 겸허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 역시 평가받아야 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누군가의 혈통을 추적해 죄를 묻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다.

하영 개인의 연예계 활동을 둘러싼 판단 역시 시청자와 대중, 제작사가 각자의 기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그 판단의 근거가 배우 본인의 행위인지, 아니면 단지 몇 세대 전 조상의 행적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친일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주장과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묻지 말자는 주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원칙이 함께 서야 한다.

 

역사는 기억하되, 책임은 개인에게 묻는 것.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순간 역사는 교훈이 아니라 또 다른 낙인이 될 수 있다.

하영을 둘러싼 이번 논란이 우리 사회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현재의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과 사람을 혈통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어쩌면 두 가지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일 것이다.